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⑪

공융의 발해국 북해상 시기는 그의 인생 중기에 해당한다. 권력자 동탁에게 밉보인 결과로 맞은 위기로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에서 때로 위기란 기회의 또 다른 얼굴일 때가 많다. 

공융이 38살되던 191년, 북해상으로 임지에 온 공융은 초토화된 북해의 백성을 수습한다. 또 군사를 모집하고 곳곳으로 격문을 보내 세력을 집결하는 등 자체 방어 능력을 강화한다. 그 결과 황건적의 식량 약탈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며 20만 황건적을 다른 지역으로 후퇴시키는 전과를 거둔다. 재차 침입한 황건적 역시 격파해 성읍을 수복한다. 여기에 유가적 덕성 회복을 권장하고 학교를 세웠으며, 인재를 발탁하고 효행과 선행을 장려하는 정책을 편다.

이듬해 192년 동탁이 여포에 의해 살해되고 낙양은 이각과 곽사가 서로 다투느라 아수라장이 된다. 193년, 40살이 된 공융은 황건적과의 싸움에서 크게 패해 서주로 달아났다가 1년 후, 다시 북해로 되돌아와 유비에 의해 영청주자사의 지위에 추대된다.      

천하는 영웅들이 더욱 두각을 드러냈으며 원소와 조조의 세력이 가장 컸다. 공융은 43세가 된 196년에는 원소의 세력과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1년 이상 힘든 싸움을 한 듯하다. 거듭 패배한 공융은 가족조차 구출하지 못하고 겨우 혼자 피신하는 상황까지 맞는다. 

이 무렵 조조는 이각과 곽사의 싸움 사이에서 곤란한 지경이던 헌제를 옹위하고 수도를 허도를 옮겨 한나라를 재정비해 천하를 주도할 대의명분을 선점한다. 포로와 다름없이 조조에 이끌려 허도에 자리한 헌제는 자신을 충심으로 보좌해 줄 인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직접 조서를 내려 공융을 부른다. 이로써 공융은 6년에 걸친 북해상 경력을 마치고 중앙 정치무대로 복귀하게 된다. 당시 조정은 조조가 상국의 지위에 있으면서 모든 권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공융은 조조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서게 된 셈이다. 44세인 197년의 일이다. 

공융에게 위기인 듯 보였던 북해상 발령은 그가 배워 품은 유교적 이상을 직접 백성에게 실현해 볼 기회였다. 어느 정도 시도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공융의 이 시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너무 이상적인 면에 치우쳐서 호족들이 그를 만만히 보았다, 법치에 기반한 정치를 펴려 했으나 제대로 실행된 것이 없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가도 있다.

그중 인재 기용과 관련하여 "책모가 뛰어나다고 평판이 높은 죄승조 우의손을 명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높은 자리에 임용하고는 이들을 중히 쓰지 않고 진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말만 앞서고 별 재주 없는 왕재법과 유공자라는 인물을 총애하여 중용하였다"라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특히 좌승조 유의손과 관련해서는 후한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당시 원소와 조조의 세력이 갈수록 커지고 천하를 주도해갔으나 공융은 어느 편에도 붙지 않았다. 그러자 좌승황조가 공융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해 붙는 것이 어떠냐고 건의했는데, 공융은 그 건의를 시류와 권력에 영합하라는 권고로 해석하고 대로해 좌승조를 처형한다. 그러자 우의손은 자신도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달아나 버렸다." 

여기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의미를 잠시 살피고 넘어가려고 한다. 장차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수련하고 그 기초 위에 차근차근 발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이 경구는 사실 당시 중국의 국가 체제 구조를 연결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중텐(易中天) 교수는 저서 『제국을 보다』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방국(邦國-춘추전국시대 이전의 주나라 중심으로 여러 나라가 연방해서 구성되었던 국가제도) 시대의 '중국'은 '천하'가 아니다. 또한 방국 시대의 '국가' 역시 '국가'가 아니다. '국'과 '가'이다. 가, 국, 천하는 서로 다른 세 개의 개념이다. 천하는 천자(황제)에게 속하고 국은 국군(國君)에 속하며, 가는 대부(大夫)에 속한다. 천하는 몇몇 '국'으로 이루어져 있고, 국은 무수한 '가'(食邑 )로 나뉜다."

즉 '가(家)'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다. 그것은 강역, 자민(백성), 그리고 독자적인 재정수입이 존재한다. 대부는 자신의 '가'에 대한 독립적인 자치권을 소유한다.    

결국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개념과 매우 일치한다. 공융은 독립적인 가(家)인 발해국의 상(相=大夫)이다. 수신(修身)을 넘어 제가(齊家)의 단계인 것이다. 지금 세상은 난세다. 따라서 상황을 잘 보아 지혜롭게 선택을 한다면 원소와 조조처럼 치국(治國)의 국군(國君)으로 올라설 수 있다. 그리고 평천하(平天下)도 꿈꿀 수 있다. 시류를 타는 것이 어떠냐는 좌승조의 건의에는 이러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충심을 버리고 역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황제 중심의 유교적 충의 사상이 확고한 공융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는 만무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전투에서 거듭 패배하고 가족마저 잃은 공융은 헌제의 때 맞은 부름이 기회로 보였을 수도 있다. 예전 동탁의 차도살인 방책인 북해상 발령이 위기의 얼굴을 한 기회였다. 그렇다면 중앙 정치무대로 복귀의 길을 여는 황제의 조서는 기회의 얼굴을 하고서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것이 문신인 공융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인생의 위기와 기회를 분별하는 안목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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